마켓플레이스
돌봄 일감은 늘었는데 플랫폼 종사자는 줄었다
게시일: 2026-08-27
해결할 문제
짐 옮기기, 장 대신 보기, 물건 전달처럼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 일일수록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가족에게 부탁하기는 미안하고 업체를 부르기엔 일이 작으며,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자니 상대를 판단할 재료가 없다.
왜 지금인가
고용노동부 2023년 플랫폼종사자 실태조사에서 가사, 돌봄 종사자는 수요가 느는데도 1.9% 줄었다. 반대로 간헐적 참가형은 22.6%로 늘었다. 짧게 일하려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짧은 일감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추천 인재
지역 커뮤니티 운영을 해 본 사람, 양면 마켓플레이스의 초기 밀도를 만들어 본 그로스, 신원확인과 분쟁처리를 아는 운영, 법무 인력, 위치와 경로를 다뤄 본 백엔드 엔지니어.
작은 일일수록 사람을 못 구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2024년 8월 5일 발표한 2023년 플랫폼종사자 실태조사에 이상한 대목이 하나 있다. 전체 플랫폼종사자는 88만 3천 명으로 전년 79만 5천 명보다 11.1% 늘었는데, 가사, 돌봄 분야만 1.9% 줄었다. 발표문은 “맞벌이 확산, 노령인구 증가 등으로 인한 돌봄 서비스 수요 증가 추세에도” 감소했다며 “적정 인력수급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수요가 느는 분야에서 공급이 줄었다는 말이다.
같은 조사에 답이 될 만한 대목이 또 있다. 일하는 방식별로 보면 주업형은 57.7%에서 55.6%로 줄었고 간헐적 참가형은 21.2%에서 22.6%로 늘었다. 잠깐씩만 일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동네의 짧은 일감과 만나지 못한다.
일감의 특성을 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짐 하나 같이 드는 데 삼십 분, 장을 대신 봐 주는 데 한 시간, 갑자기 손님이 몰린 가게에서 두 시간. 이런 일은 구인 공고를 올리기엔 너무 작고, 업체를 부르기엔 최소 단가가 맞지 않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자니 찾아온 사람을 믿을 만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참거나 가족에게 미안한 부탁을 한다.
무료를 허용해야 밀도가 생긴다
여기서 흔히 하는 설계 실수가 하나 있다. 이런 요청을 모두 유료 거래로 만들려는 것이다.
유료로만 운영하면 단가가 낮은 요청부터 사라진다. 삼십 분짜리 일에 최저임금과 수수료, 이동시간을 얹으면 요청자에게는 부르기 아까운 금액이 되고 제공자에게는 나가기 아까운 금액이 된다. 양쪽 모두 포기를 택하면 그 동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양면 마켓플레이스에서 가장 비싼 실패는 나쁜 거래가 아니라 거래가 없는 것이다.
무료 도움을 같은 판에 두면 이 구간이 열린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르는 김에 옆 동 어르신께 생수를 가져다드리는 일에는 값을 매기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활동 이력이 쌓인다. 본인확인 여부, 완료 횟수, 약속 이행률, 신고 이력 같은 것들이다. 나중에 유료 요청을 받을 때는 그 이력이 값을 대신한다.
그러니까 무료 도움은 자선 기능이 아니라 밀도를 만드는 유입 경로다. 첫 거래의 문턱을 없애 사람을 먼저 모으고, 신뢰 이력이 쌓인 뒤에 유료 서비스를 붙인다. 실태조사에서 종사자들이 꼽은 애로 1위가 “계약에 없는 업무 요구”(12.2%)라는 점도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처음에는 업무 범위를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요청만 받아야 한다. 장보기, 물건 전달, 작은 짐 옮기기, 매장 단기 보조. 아동 돌봄과 의료 행위, 고액 물품 운반은 초기 카테고리에서 빼는 것이 맞다.
수수료가 아니라 이동에서 번다
연결 수수료에서 수익을 내려 하면 이 모델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무료 도움에 수수료를 붙이는 순간 더는 무료가 아니다. 유료 도움의 수수료를 올리면 그만큼 제공자가 받는 돈이 줄어 다시 밀도가 떨어진다.
돈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이 서로 돕기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는 경로다. 누군가 성수동에서 건대입구로 도움을 주러 가고 있다면, 그 경로에서 추가 이동이 거의 필요 없는 물건 전달이나 장보기 요청을 골라 보여줄 수 있다. 배달 플랫폼이 물건 하나를 옮기기 위해 사람을 새로 출발시키는 구조라면, 이쪽은 이미 출발한 사람의 경로에 일을 얹는다. 요청자는 더 싼값에 도움을 받고, 제공자는 같은 이동으로 보상을 더 받는다. 여기서 생기는 소액 중개 수익은 대부분 제공자에게 주고 일부만 운영비로 남긴다.
flowchart LR
A[도움 요청 등록] --> B[본인확인 · 신뢰 이력 확인]
B --> C{무료 · 유료}
C --> D[도움 수행]
D --> E[이동 경로에 추가 요청 제안]
E --> F[전달 · 장보기 소액 수익]
D --> G[완료 확인 · 상호 평가]
G --> B
여기에 수익원 셋을 더 붙일 수 있다. 동네 마트와 편의점, 세탁소 같은 지역 사업자를 장보기 요청과 연결하는 제휴가 있다. 단기 인력이 반복해서 필요한 매장에는 여러 명을 동시에 모집하고 즐겨찾는 제공자를 다시 부를 수 있는 소상공인 기능을 팔 수 있다. 지자체와 복지기관은 특정 지역의 무료 도움에 필요한 보험료와 인증비를 후원할 수 있다. 어느 쪽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값을 올려 수익을 내는 구조는 아니다.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이 아이디어에서 어려운 부분은 코드가 아니다.
첫째는 밀도다. 서울 전체에 흩어진 1,000명보다 한 동네 안에서 오가는 100명이 낫다. 생활권 하나를 정해 그 안에서만 시작하고, 요청 하나가 올라왔을 때 삼십 분 안에 수락되는 상태를 만들기 전에는 다음 동네로 넘어가지 않는 편이 낫다. 이 원칙을 놓쳐서 사라진 지역 서비스가 많다.
둘째는 안전과 법이다. 사람이 직접 만나는 서비스이므로 사고 하나가 서비스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심부름과 배달을 중개한다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비롯한 개별 법령이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단기 근로로 보는지 도급으로 보는지에 따라 4대보험과 산재 적용도 달라진다. 상해보험과 분쟁 처리 절차는 첫 사고가 난 뒤가 아니라 첫 거래 전에 마련해야 한다.
셋째는 기존 사례가 이미 보여 주는 한계다. 생활 심부름 앱 해주세요는 2024년 2월 기준 가입자 140만 명, 누적 서비스 100만 건을 발표했고 거래액은 2021년 1억 8천만 원에서 2023년 40억 원으로 늘었다. 2025년에는 누적 가입자 200만 명, 파트너 30만 명 규모다. 그런데 2023년 거래액 40억 원을 그 시점 가입자 14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연간 3천 원이 안 된다. 가입자는 많지만 거래는 드물다는 뜻이다. 이 시장의 병목은 사용자 확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한 해에 몇 번 쓰느냐에 있다.
그래서 처음 검증해야 할 것도 다운로드 수가 아니다. 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실제로 작은 도움을 요청하는지, 다른 사람이 그 요청을 수락하는지, 좋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 한 달 안에 다시 돌아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안 되면 나머지 기능은 모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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