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
메모리값은 다시 안 내려온다 — 레노버가 본 5년짜리 구조 변화
게시일: 2026-06-28
무슨 일이 있었나
레노버가 국제슈퍼컴퓨팅학회(ISC 2026)에서 메모리 시장을 두고 단호한 전망을 내놨다. D램과 낸드 가격이 향후 5년 넘게 예전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8년 신규 생산 시설이 돌기 시작해도 기준선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머문다고 봤다. 가격이 빠지면 다시 채워지고 또 회복되던 메모리의 경기 순환 공식이 깨졌다는 진단이다.
원인은 공급의 방향이 바뀐 데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곳이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성능 서버 D램에 생산 능력을 몰아주면서, 범용 D램과 낸드로 갈 웨이퍼가 마른다. HBM은 같은 용량을 만드는 데 일반 DDR5보다 약 3배의 웨이퍼를 잡아먹는다. 제조사가 돈이 되는 쪽으로 라인을 돌릴수록 흔한 메모리의 공급은 구조적으로 줄어든다. IDC는 2026년 D램 공급 증가율을 16%, 낸드를 17%로 보는데, 2018년 이후 시장을 떠받치던 2030% 증가율에 한참 못 미친다. 서버 DDR5 계약가는 분기마다 6070%씩 뛰고, 일부 D램은 1년 새 가격이 곱절 넘게 올랐다. 시스템 설계도 따라 바뀐다. ‘메모리를 최대한 많이 꽂는’ 구조에서 ‘GPU 가속 컴퓨팅으로 메모리 의존을 줄이는’ 구조로 옮겨 가는 흐름이다. 16채널 서버 한 대가 1TB 이상을 요구하는 시대에, 그 1TB의 값이 통째로 비싸졌다.
창업자에게 의미하는 것
메모리가 부품 원가의 변동 항목에서 고정된 구조 비용으로 바뀌었다. 하드웨어를 파는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맞는다. 디바이스, 엣지 기기, 로봇처럼 D램·낸드가 BOM에 박힌 제품은 마진이 영구적으로 눌린다. “다음 분기엔 메모리값이 빠질 테니 버티자”는 전제는 이제 위험하다. 가격이 안 빠지는 걸 기본값으로 깔고 원가표를 다시 짜야 한다.
AI 인프라를 쓰는 팀에도 직격이다. 추론·학습 비용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 메모리를 펑펑 쓰는 아키텍처로 설계해 둔 제품은 클라우드 청구서가 구조적으로 무거워진다. 반대로 같은 일을 더 적은 메모리로 해내는 팀이 원가 우위를 갖는다. 모델 양자화, 스트리밍·온디맨드 로딩, 메모리 효율적인 서빙 설계가 ‘있으면 좋은 것’에서 ‘생존 조건’으로 올라선다. 레노버가 말한 ‘GPU 가속으로의 전환’은 곧 메모리에 기대던 설계를 연산으로 바꾸라는 신호다.
한국 창업자에겐 양면이 있다. 메모리 삼사가 자국 기업인 만큼 공급망 접근에 상대적 이점이 있지만, HBM 우선순위에 밀려 범용 물량을 확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드웨어 팀이라면 부품 조달을 분기 단위가 아니라 연 단위 장기 계약으로 묶는 전략을 지금 검토할 때다.
지금 취할 수 있는 행동
제품 원가표에서 메모리 항목을 찾아, 단가를 지금 시세의 1.5~2배로 올려 시나리오를 다시 돌려 보자. 그래도 마진이 남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다. AI 제품이라면 “이 기능이 메모리 대신 연산으로 갈 수 있나”를 아키텍처 리뷰의 고정 질문으로 넣어라. 메모리값이 구조라면, 그 구조 위에서 싸게 돌아가는 설계가 곧 해자다.
참고 자료